Friday 20 September 2024

다이빙대

  너는 다이빙대에 대해서가 아니라,

다이빙대로서 너 자신을 알려고 한다.

너의 엄지발가락이 다이빙대 끝을 아슬아슬하게 움켜쥐거나, 네가 다이빙대의 혈관으로 흘러 들어가는 혈액일 필요는 없다. 너 자신이 벌써 오래전부터 다이빙대이다.

다이빙대인 너는 아래 수심이 깊어 보이는 파란 물을 보지 않는다. 파란 물은 네 앞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이다.

그림은 어디 걸려 있는지 알 수 없고, 너는 더 이상 보지 않고 물감 속을 헤엄칠 거란 걸 안다.

다이빙대는 뭔가를 뿌려버리는 충동이 있다. 다만 좀 전에 파란 물감 덩어리이던 물이 거친 물결의 바다가 되면서 다이빙대는 무방비한 코르크 마개로 요동치며 바다를 뛰어올라 전신주 기둥에 세게 부딪히면서 자동차 한 대가 급히 지나간 검은 아스팔트 위로 무참하게 쏟아진다.

그러니까 너는 하나의 다이빙대로서 다이빙대를 알기 위해 다이빙 선수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너는 다이빙대로서 다이빙을 알기 위해 수학을 사용하기로 한다. 우주가 우주를 알기 위해 수학을 사용했던 것처럼.

하지만 수학이 우주의 정체를 조금 밝혔는지 몰라도 우주는 수학을 이용한 적이 없다.

그러니까 앙리 미쇼는 메스칼린을 이용하여 자신을 탐구한 적이 없다. 미쇼는 자신의 비물질을 이용하여 자신의 물질에 가닿으려 했다.

그러나 그 일은 의식의 경계에 서 있는 것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다이빙대에 서 있는 것만으로 다이빙대일 수 없는 것처럼.

하지만 다이빙대에서 점프하는 순간 의식은 없다. 전신을 부르르 떠는 다이빙대만 남는다.

그러니까 너는 다이빙대에 대해서가 아니라

다이빙대로서 너 자신을 말해야 한다.